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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를 두드렸다.

아주 오랫동안

  그 옛날을 어디 한번 떠올려보자.

  남자는 제 앞에 있는 낡은 사진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그 먼 과거를 회상했다. 낡고 닳아서, 전부 바래버린 그 사진. 사진 속의 그 사람은 밝게 웃으며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는 높게 틀어 묶고, 옷은 그 당시, 그 마을 여자아이들이 입기 좋아했던 옷이다. 한 아름 안아 든 것은 딸기가 가득 든 바구니. 보는 것만으로도 달아 보일 정도였더랬지. 그때부터 단 것을 좋아했던가. 너는,

 

  그때의 사진 속 주인공인 여자는 마을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은 인기인이었다. 어른들은 공경했고, 아이들은 잘 돌봤으며- 또래에게는 친절했다. 그래, 딱 그에게 만을 제외하고는!

 

  여자는 남자를 왜인지 처음 봤을 때부터 싫어했다. 둘이 처음 마주친 것은 바닷가로, 여자는 무언가에게서 도망쳐 나온 듯한 모양새였다. 이 사진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지. 여자, 그때는 아직 아이였던 그 사람. 아이의 푸른 눈은 씻지 않아 더러운 옷과 얼굴, 몸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순간 그는 멍청하게 생각하고 말았더랬다. 바다의 요정인가, 같은. 어린아이만이 할 수 있는 멍청하고 순수한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여자를 요정에 비교한 것에 사과하고 싶어진다. 물론, 그 여자가 아닌 요정에게. 정말이지, 요정에게 미안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웬 이름도 모르고, 이상한 인간에게 비교당하다니...

 

  아무튼 그때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지. 또한 우스운 일이다. 그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평범하게 살아갈 것처럼 굴던 네가 결국 된 것은 마피아이며, 그 안에서도 최고의 정보들을 주무르고 있는 인간이 되었다니. 네 두 번째 양부모가 그 사실을 들었다면 관에서 뛰쳐나왔을지도 모르겠어. 남자는 사진을 정장 안 주머니에 구겨지지 않게 밀어 넣으며 일어났다. 슬슬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아마 한밤중에야 그의 거처에 도착하리라. 남자가 낡을 대로 낡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그를 반긴 것은 새하얀 오토바이였다. 신기종이군, 최근에 또 바꾼 건가. 남자는 여자가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사 제게 자랑하던 것을 떠올렸다. 이것 봐! 이번에 새로 나온 거래! 너무 예쁘지 않아? 라며 신나서 묻는 여자와 그럴 거면 오토바이와 사귀지 왜 저와 사귀냐는 비아냥. 그리고 다시 싸움. 그런 일이 또 있었다.

 

  그런 추억들을 전부 밀어 넣으며 남자는 자연스럽게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 모습을 그놈이 본다면 노발대발 화낼 게 분명한데. 왜 새것을 자기 허락도 맡지 않고 마음대로 타냐며... 뭐, 부재중이니 상관없겠지.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제가 갈 곳으로 간다. 그러고 보니 네게 오토바이를 운전하지 못하는 척하면서 얻어타는 것이 썩 즐거웠는데. 이렇게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하게 된 것도 꽤 오랜만이다. 남자는 바람을 가르며 깔깔거리던 여자, 그러니까 제 연인에 대해 다시 한 번 회상했다. 정말로 우스운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바람이 시원하고 날이 좋다며 웃는 네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의 사진은 없던가. 하긴, 우리 둘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으니 그랬을 법도 하다.

 

  남자가 도착한 곳은 또 다른 집이었다. 어디보자. 남자가 익숙하게 번호를 누른다. 그 어떤 전자음도 들리지 않은 채로 문은 열리고, 남자는 집으로 들어선다. 싸늘한 바람이 빈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춥군그래. 남자는 성냥을 그어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불의 온기가 넘실거리며 차가운 공기를 죽여나갔다. 사진첩이 어디 있더라. 또 가구의 위치를 바꿨군. 남자가 혀를 차며 집 구석구석을 뒤졌다. 여자는 집의 가구 위치를 잘 바꾸는 편이었다. 이유는 글쎄. 남자를 골리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그리고 그 의도는 지금 확실하게 통한 듯싶었다. 남자는 사진첩을 찾기 위해 침대 밑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가구의 위치만 바꾼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진첩과 같은 사생활과 관련된 물건들은 죄다 숨겨놓은 모양이군. 남자는 침대 밑에서 나온, 지인들의 전화번호만을 적어놓은 전화번호부를 감흥 없이 넘기고는 뒤로 던져버렸다. 사진첩을 대체 어디다 숨겨놓은 거야? 이제는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제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 사진첩이 어디에 있을 것 같지? ]

 

  그는 본래 이런 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지만, 만일 이 집 주인이 의도적으로 뭔가를 숨겼다면 그 혼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이 집 주인도 그만큼 비밀 공간을 만드는 데에 탁월했으니까. 답장은 곧 도착했다.

 

[ 리본. 일단 나는 물건 찾아주는 로봇이 아니고... 이런 거에는 초 직감도 발동 안 하니까!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싱크대 서랍이라던가, 소화전 쪽이 아닐까? ]

 

  흠.

  초 직감이 발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감 자체가 날카로운 편이니 믿을 만 했다. 평소의 성격이라. 확실히 그럴 만도 하군, 이 집에는 소화전이 없으니 싱크대 서랍이겠고. 남자는 짜증을 억누르며 싱크대의 서랍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진짜로 있는 사진첩에,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 자리에 있었으면 미간에 총알구멍 하나로는 끝나지 않았을 터인데. 그는 문득 집의 벽을 보았다. 검게 탄 총알 자국이 있었다. 아직 벽지를 바꾸지 않았군. 하긴. 바꾸는 주기는 한 달에 한 번이었으니까. 남자는 소파에 길게 늘어지며 사진첩을 펼쳤다. 오토바이를 타면서는 보지 못하니까, 여기서 잠깐 보고 갈 생각이었다.

 

“허.”

 

  자기 사진은 거의 없었다.

  있긴 했지만,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남자의 사진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의 지인, 사진첩 주인의 지인들이 더 많았다. 대부분이 몰래 찍은 사진들이군. 남자의 미간이 모였다. 어쩐지, 어느 날 갑자기 ‘사과할 일이 있는데...’로 운을 떼더라니. 물론 그때는 자신의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열 스푼 이상을 탄 것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뭐, 어디다 뿌리고 다닐 것도 아니고. 상관없긴 하지만 괘씸하군. 그는 자신이 몰래 찍었던 사진첩 주인의 모습 같은 것은 진작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린 채로, 속으로 괘씸한 연인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는 그건가,

  남자는 유일하게, 그와 그의 연인이 둘 다 나온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그 날이군. 사교 회장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이 찍어준 둘의 사진이었다. 사이좋은 연인을 연기하느라고 그랬지. 그는 질색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겉으로는 하하 호호 웃던 서로를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도 구역질 나는군. 아마 그의 연인도 그 소리를 들었다면, 저도 그렇다며 소리를 버럭 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푸른 드레스에 그놈의 붉은 귀걸이. 그리고 빠지지 않는 목의 붕대. 저 붕대가 패션을 다 씹어먹는군. 하여간 풀라고 말해도 죽어도 안 듣지. 남자는 목의 흉터를 생각하며 혀를 찼다. 결국은 죽을 때까지 과거의 망령으로 살고 끝났군, 안 그래?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던 거야.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이 사진첩을 가져다줘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까. 모닥불은 타다 보면 알아서 꺼지겠지. 그리고 이 근처는 치안이 안 좋으니 적당히 인기척을 내주는 편이 강도가 안 들 것이다. 뭐, 설사 강도가 든다고 해도 끝까지 찾아가 죽여주면 그만이지만.

 

  오토바이에 다시 시동을 건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오토바이다. 무언가 묻어도 티가 잘 날 것 같은, 성가신 오토바이. 낮은 진동과 함께 오토바이는 다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아스팔트 바닥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오직 소음으로만 느껴진다. 직접 운전해서 그런 것인지, 뭔지. 남자는 미간을 좁히며 더욱 속력을 냈다. 빨리 이 기분 나쁜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싶다. 끈적한 무언가가 저를 끌어당겨, 진흙 속으로 처박는 것만 같았다. 이런 짜증 나는 오토바이 따위에서는, 빨리 내려야만이...

 

‘내 오토바이가 어쩌고 저째? 네 시커먼 옷보단 낫다 야.’

 

  문득 떠오르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있을까. 남자는 이를 악물며 속도를 높였다. 텅 빈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음에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처음 너의 그 모습을 봤던 그때가, 영사기의 필름이 돌아가듯 돌아가 다시 마주한다. 너도, 너를 그렇게 만든 그놈들도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야. 그때 너를 갈가리 찢어버리려는 것을, 간신히 그의 제자가 말렸더랬다. 리본, 그만둬! 그만두라니, 무엇을? 약속을 어겼어. 알잖아, S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게.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때의 대화가 바람과 함께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왜 하필 이 기억이. 다른 기억은 없는가. 비교적 최근의 기억이어서인지, 한번 시작되자 끝도 없이 이어진다. 손에 힘을 더욱 주어, 속도를 더욱 높인다. 이제는 브레이크를 밟아도 평소보다 몇 미터는 더 미끄러져 가 멈출 테지. 잘못하면 사고도 날 테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 빌어먹을 오토바이를 이 세상에서 ‘우연히’ 없애버리고, 저도 ‘우연히’ 세상을 뜬다면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을지도 모른다. 그야, 이 오토바이를 부수지 못하는 것도 제가 스스로 죽지 못하는 것도 전부 네가 지키지 않은 그 약속 때문이니까!

 

  아아, 너를 저주한다.

  그저 저주할 뿐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라도 널 이 세상에서 흔적도 남지 않게 만들어버리고 싶다. 썩을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평소 같았으면 그의 연인이 했을 생각과 말투를, 이제는 그가 사용하고 있다. 그는 항상 그의 연인의 말투와 생각이 저속하다고 했지만, 정작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인생.

 

  본래 히트맨이라 하면, 사람을 죽이는 직업이니 사람의 죽음에는 익숙해질 데로 익숙해져 있어야만 한다. 근데 그 사람의 죽음에는 네 죽음이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이지. 그야, 그렇잖나. 너는 나와 한 약속을 지켜야 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죽이겠다는 그 빌어먹을- 그리고 너무 어린 날에 해서 젖내까지 나는 그 약속을! 다른 건 몰라도, 그 약속은 지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다시 한번 더 죽여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 숨이 턱 하니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왜지? 왜 이렇게까지 나는 너에게 집착하는 거지?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었다. 정말로 그는 몰랐다. 그의 연인을 그가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그는 자기의 연인을 증오하였고, 귀찮아하였으며, 가끔은 죽이고 싶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연인도 그를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연인은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그와 그의 연인의 다른 점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자신이 그의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얼빠진 녀석 따위, 좋아할 리 없잖아. 사랑할 리 없잖아. 하지만 그의 제자의 아버지이자, 그의 동료 중 한 명인 사와다 이에마츠가, 너도 참 중증이라며, 그리고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냐며. 그것도 ‘네가’ 같은 말을 해오고, 미묘한 눈빛으로, 마치 알고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게 아니냐는 눈으로 저를 봤을 때는- 왜인지,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얗고 푸르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하얀색과 푸른색은 너의 색이었지. 그때 마저도 나는 너를 떠올렸던가. 정말로 중증일지도 몰랐다. 기분 나쁘게도 말이지.

 

  도착한 곳은 숲이었다.

  오토바이가 지독한 마찰음을 내며 미끄러져 멈추었다. 이딴 식으로 타이어를 쓰면, 교체해야 하는 것도 금방이겠군. 녀석이 분명 화를 낼 테지. 남자는 오토바이가 남긴 기다란 타이어 자국에 짧고 쓸데없는 감상을 남겼다. 남자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숲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자 녹색의 파도가 인다. 새소리도 가끔 들려오는, 아름다운 파도다. 그래, 아름답지.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검은 것이 녹색의 파도 속으로 녹아들어 간다. 곧 검은 것은 녹색의 그림자 때문에 완전히 녹아 사라진다. 남자는 숲 안을 걷고 또 걸었다. 끊임없이 걸었다. 도착한 곳은 숲 안에 작은 공터였다. 하얀색 관이 놓여있었다.

 

“스텔라.”

 

  남자는, 그의 연인이 스스로 지은 그 이름을 부르며 관의 뚜껑을 열었다. 깨끗한 시체가 하얀 꽃들에 둘러싸여 누워있었다. 늘 반만 넘겼던 그 검은색 머리카락은 이제 흰 꽃들 위에 흐트러져 있었다. 남자는 관 위에 걸터앉았다. 고인을 능욕하는 일이려나, 알 게 뭐야. 이 녀석과 나인데. 그는 그리 생각하며 시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의 연인이 한참 옛날에 남겼던 유언- 내가 죽으면 무조건 관도, 내 옷도 하얀색이어야 해! - 때문에, 그의 연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하얀색이 아닌 부분은 머리카락과 목의 흉터였다. 너는 이 목을 참 많이 신경 썼었지? 그의 손이 시체의 목으로 향했다. 처음 너의 시체를 봤을 때, 네 목을 부러뜨릴 뻔했던 걸 츠나 녀석이 말리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너는 모르겠지.

 

  목으로 향하는 손을 쳐내지 않는 창백함이 낯설다. 너는 네 목을 꽤 소중히 여겼지. 정확히는, 싫어했지만 아무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종의 버튼 같은 거였지만. 하지만 결국 네가 죽은 원인은 네 심장이구나. 검은 옷의 남자는, 그저 그 흉터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지금 당장은 특수한 조치를 취해 네 시체가 그대로 라지만은, 너는 곧 불탈 것이다. 네가 재가 된 모습보다는, 이 모습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떠들지도 않고 창백한 채로 누워만 있는 너를 보는 것도 고역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네 그 두 눈을 다시 보고 싶은데 말이야. 그는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며, 목에 두었던 손을 올려 제 연인의 눈가를 쓸었다. 네 푸른 두 눈이 벌써 그립다. 나는 네 눈이 바다를 닮았다고 했지만, 그 어떤 바다도 네 눈 색만은 못하더군. 그래서 더욱더 그리워. 그립다니, 우스워. 너와 몇 년이고 떨어져 있었던 지난날에는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네 눈을 더 볼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나는 꽤 필사적으로 되고 만다. 네 흔적과 기억을 쫓는 것에.

 

“샌드.”

 

  제게만 알려주었던 그 본명.

  네 본명이 알고 싶다고 졸라대던 그 어린 날, 네가 마지못해 말해준 네 이름. 인형에게도 이런 이름은 지어주지 않을 정도로, 성의 없는 이름이었기에 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 이렇게 부르면 당장에라도 그 두 눈을 시퍼렇게 뜨며 욕지거리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남자는 작게 웃었다. 그래, 과거의 흔적을 그는 더듬고 있었다.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네가 죽으니 너에 관련된 일에는 그러기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네가 들으면 질색할 법한 말이지만, 남자는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최종 목적이었다.

 

“나는 네 마지막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왔다.”

 

  네 마지막 사진.

  네가 두 눈을 감은, 그 마지막 사진을. 나는 찍으러 왔다.

마지막이라고 하니 괜히 토할 것처럼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는다. 슬픔도, 설움도 오지 않았던 체를 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고작 사람 하나 죽은 것에 동요할 필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왜 쉽지가 않은 것인지.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딱 한 방울 흘렸다. 흰 꽃 사이로 눈물이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슬픔과 애도는 이것으로 충분하리라. 그래, 이것도 그의 연인이 요구한 것 중의 하나였지. 부디 제가 죽으면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달라는. 그래서 딱 한 방울을 흘려주었다. 이 이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싫었다. 복잡한 마음이 엉켜 들어간다.

 

  남자는 마지막을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 어서 이 빌어먹을 짓거리를 끝내고 돌아가야겠어. 찰칵, 가벼운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힌다. 그리고는 끝. 전부 끝이었다. 네 마지막 사진을 찍고자 이곳에 왔으니 이제 돌아가야겠지. 네 사진첩에 추가될 마지막 사진이야. 그는 그리 중얼거리듯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사진첩은 시체를 태울 때 같이 태울 작정이었다.

 

“지옥은 어때?”

 

  좋을 린 없겠지만, 지옥에서 나를 기다리는 기분은 어떻지?

그는 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던졌다. 답은 지옥에서 듣도록 할까. 제 손가락 중 검지와 중지를 곧게 펴, 제 입술에 대고는 곧 시체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직접 입을 맞대는 것은 불결하니 이것으로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하지. 그는 관 뚜껑을 닫고 몸을 돌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봉고레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정말로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인가. 하늘은 순식간에 잿빛에 되고, 번개가 친다. 우르릉, 쿵. 같은 웃기지도 않은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히트맨은 숲을 여유롭게 거닌다. 비에 젖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차피 갈아입을 옷이었다. 빗물이 그의 옷 사이로 스며든다. 비에 젖은 풀 사이로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그는 걸었다. 그게 네 대답인가? 거창하기도 하군그래. 문득, 네 불꽃이 폭풍의 것이었으면 폭풍이 왔을까 하는 웃기지도 않은 망상을 해본다. 비에 젖은 오토바이 위에 올라탄 히트맨은 슬슬 시동을 걸었다. 빗속이어서인지 소리가 더욱 잘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쏘아지듯, 오토바이는 앞으로 튕겨 나간다. 빗속을 달리며, 히트맨은 온갖 잡생각들을 빗물에 흘려보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각들은 솟아난다.

 

  솟아나고, 솟아난다. 남자가 아무리 회피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네 미소가, 네 말투가, 목소리가, 눈이, 체온이, 냄새가, 모든 것이. 일순 치솟아 오른다. 아까 봤던 관 속의 네 창백한 얼굴마저도, 끝없이 솟아난다. 솟아나는 것들을 전부 무너뜨리기 위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오토바이의 속도는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고작 과속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는 것을 그는 안다. 이것은 그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곳에 빗물들이 갈라지며 길을 만든다. 남자는 절실하게, 술과 담배를 찾고 싶어졌다. 곧장 봉고레 성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독한 술을 한 병 다 비우고 줄담배를 피워야겠어. 네가 피우던 담배는 이제 다 버려야지. 그 담배를 빌리러 올 사람도, 피울 사람도 없을 테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네가 내게 담배를 빌리러 오는 것을 꽤 기껍게 여겼던 것 같다.

 

  끼익, 지독한 마찰음이 귀를 파고들어 가 고막을 때린다. 커브 길을 돌아서, 금방이다. 남자는 왜인지 조급해졌다, 왜인지, 한시라도 이 오토바이에 앉기 싫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연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수록, 지독한 것이 심장을 후벼파는 듯한 기분이었고,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오토바이와 이 지긋지긋한 비였다. 이것들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이 또 하나의 망령이 되어버렸다.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아, 나는 망령이다. 나는 너를 저주했건만 오히려 네가 나를 옭아맸구나. 잠깐 지나갈 것 같던 비는 더욱더 많이 쏟아졌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마치 고통을 호소하듯, 절망을 외치듯, 그리고 저주를 퍼붓듯. 그리고 남자는 그것을 감내하기로 했다. 비가 그를 두드렸다. 아주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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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봄과 함께 오리니,

​당신의 시체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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