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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그의 품에서 그녀가 입을 뻐끔거렸다. 이미 폐를 다쳐 나오는 목소리는 없었으나 입 모양이 보스, 라고 그를 부르는 것 같았다. 디노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계속해서 그녀의 살이 짓뭉개지도록 상처를 압박해 지혈하려 노력했으나, 그의 손 틈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피는 도무지 멈추지를 않았다. 누군가가 그로부터 의식을 잃은 그녀를 빼앗아 들었다. 빼앗기지 않으려 손을 허우적거리고 보자, 그는 자신의 오른팔인 로마리오였다. 로마리오는 어느덧 도착한 구급차에 그녀를 실어 보내고서는 돌아와 망연한 낯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제 보스를 살폈다. 오늘을 위해 차려입은 고급 정장을 온통 피로 더럽힌 디노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병원에 따라가겠어.”

“무리할 것 없어, 보스.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잖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데이트를 해. 내 사랑도 이해해 줄 거야. 그렇지, 자기?”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망연한 낯으로 입을 가린 채 서 있던 그의 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그녀에게 가 봐요. 애인은 선한 얼굴을 걱정으로 찌푸리고서는 디노를 재촉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다, 제 손이 지저분한 것을 알고는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애인은 제 자그만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정성스럽게 그의 손을 닦아주었다. 얼른 가 봐요. 그녀가 다시 한 번 더 그에게 속삭였다.

“나는 따라가지 않아도 되나요?”

“괜찮아. 무슨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총에 맞았는데…….”

“보스의 여자를 지키다가 다친 거지. 당신이 마음 쓸 일은 조금도 없어.”

  손 닦아줘서 고마워. 나중에 보자. 그는 그녀의 뺨에 키스한 뒤 바로 앞에 세워 자신의 차로 몸을 돌렸다. 뒷좌석에 타는 그의 뒷모습을 착잡하게 지켜보던 로마리오가 다른 조직원에게 보스의 애인을 정중히 안전한 곳으로 모셔갈 걸 지시한 뒤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

   그녀는 이미 가망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수단을 전부 동원했지만 이미 신체의 기능은 정지되고 있었고, 목숨은 생일케이크 위에 올라간 자그마한 촛불과도 같이 위태로웠다. 지금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 연장 기구를 제거하면 단박에 숨이 멎을 것이다. 디노는 의사의 견해를 듣고서는 그녀의 병실에 들어갔다. 침대 옆을 지키는 사람은 로마리오였다. 그는 죽어가는 자신의 부하를 텅 빈 눈으로 내려다보다, 로마리오에게 명령했다.

“이 애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혹시 그게 누군지 알아?”

“보스.”

“누구라도 좋으니까 당장 불러와. 다른 패밀리의 보스라고 해도 상관없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이 애의 마지막을 지켜달라고 부탁해.”

  눈물로 젖어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로마리오는 담배를 꺼내 들려다 여기가 병실인 것을 알고 그만두었다. 저 애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이야, 보스. 차마 꺼낼 수 없는 말을 삼킨 입 안이 썼다. 연모를 감추고서 사랑하는 사람의 부하로 사는 인생에 만족하다가 결국에는 그 사람의 애인을 총격에서 감싸 대신 복부를 관통당하고 사망한다. 로마리오는 자신의 보스에게 진실을 말해줄까, 고민하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에게 자신의 연정을 고백할 생각이 없었다. 그 마음을 파헤칠 권리가 자신에게 있을 리 없었다.

차라리 보스의 품에 안겨 있던 그때 숨을 놓는 것이 이 애에게는 더 행운이었겠군. 로마리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제 죽어가는 부하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자신의 보스와 저승을 향해 느릿한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을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모든 걸 지상에 내려놓고 아무 감정도 감추지 않아도 될 세계로 가는 그녀는 차라리 홀가분하게도 보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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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봄과 함께 오리니,

​당신의 시체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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