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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무너뜨리기란 쉽다.

그의 소중한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그에게서 떠나라.

그렇다면 사랑할까요? 사랑만큼 사람을 바꾸는 것이 없다고 들었답니다.

네가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연구하고 싶군. 기꺼이.

 

  작디작은 신체가 휘청거리다가, 눈앞에서 바스러지며 쓰러진다. “베르데, 무슨 일이에요. ... 베르데!” 그의 이름을 귀찮아질 만큼 불러대며 달려가 몸을 흔들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여린 숨이 방 안을 메운다. 천천히 죽어가는 과학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 베르데는 천천히 질식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그 자리에서, 싫증이 날 만큼 느리게 죽어가고 있었다. 베르데의 힘겨운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안타까운 표정이야, 린.”

“그렇다면 제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웃을까요?”

“아니, 그냥... 나까지 슬퍼져서, 말한 것뿐이야.”

 

  베르데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뺨을 쓸었다. 작은 손은 아직까지도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괴리감이 느껴질 만큼이나 기쁘고도 슬프다. 울음을 멈추려고 해도 후둑 툭 떨어지는 감정이 멈추지를 않는다. 이 손길은 분명 나를 위로하는 것일텐데,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슬펐다. 너무나도 슬퍼, 저 밑에 잠식된 기분이 들었다. 삐, 하는 이명이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 연구하지 못한 것들이 산더미인데. 이건, 아쉽군.”

“저를 홀로 두는 건, 아쉽지 않으신가요?”

“아쉽지 않아. 너를 볼 수 없는 건 슬프다는 말을 붙여야 해.”

“이런 때에도, 정말...”

  베르데가 작은 몸을 일으켜 힘겹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런 상황이니까, 말하는 거야.”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말조차 가시가 되어 머릿속에 자신을 박음질한다. 이런 기분은 몰랐을 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을 전부 잃는 사람의 감정은, 조금도 알고 싶지 않았다.

 

  슬프다는 감각에 익숙해지는 것을 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안아도 될까요?” “그럼.” 작은 몸은 품에도 들어오지 않아,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조금 우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그랬다. 베르데, 베르데... 이제는 힘겨운지, 농담거리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퍼하고, 소매로 눈물을 닦아대고, 다시 슬퍼하길 반복한 까닭에 눈마저 따끔했다.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란 쉽다. 그의 소중한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그에게서 떠나라. 베르데는 나에게서 떠났고, 나는 무너졌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잠식되도록 울었다. 사람이 하루를 꼬박 울음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날 처음 알았다.

 

  머릿속을 슬퍼질 정도로 차분히 휘젓는 사실 두 가지가 있다. 베르데는 죽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나의 세계를 잃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는 죽었다. 그러니 대답을 기대해도 돌아올 리는 없었다. “대답해주세요. 다 거짓말이라고 말해주세요.” 베르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방에서 들리는 것은 내 목소리뿐 이였다.

 

  어떻게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긍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연인이 죽으면 몇 일을 슬퍼하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연인을 흘려보낼 수 있는지, 빠르게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배우고 싶었다. 그만 우는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이런 감정을 느끼고도 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온 존경을 담아 극찬할 것이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가정이 들어가야 하겠지만, 사랑하는 상대라면 슬프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랑이 거짓된 사랑인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진짜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덤덤하게 보낼 수 있을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안, 역시 당신도 털어주길 바랄 테지만... 못 하겠어요...”

 

오늘 하루는 꽤 느리게 흘러간 느낌이었다.

덕분에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실컷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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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봄과 함께 오리니,

​당신의 시체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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