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신께 고해하듯,
신자는 울며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루체님...”
세레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동작에 맞추어 결 좋은 흰색 머리카락이 미끄러진다. 루체. 라는 이름이 쓰인 옛날의 그 묘비는 닳을 만큼 닳아있었다. 그렇게 관리를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고 만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비석은 닳아가는 것이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그 한명만을 제외하고는. 닳은 비석과는 다르게 그 주변을 장식한 꽃들은 전부 새것이었다. 당신을 위해 제가 키운 꽃들이에요. 세레는 그렇게 말하며 비석을 쓰다듬었다. 아마, 이 묘비가 닳게 된 원인에는 그도 큰 몫을 차지했을 테다. 애정이 가득 담긴 손길이지만, 애정과는 상관없이 이 묘비가 닳았겠지. 그가 루체를 사랑하는 만큼, 큰 몫을 차지했을테다.
“루체님은 제게 아리아 님을 부탁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전 그분 곁에 얼씬조차 못 하겠어요.
세레가 고해를 하듯 느릿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마치 신께 고해하듯, 신자는 울며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분은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정말로, 대공 그 자체시고. 빛나시는 분이죠. 하지만 루체님. 그는 묘비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하나하나 떨어지는 눈물은 비석을 타고 땅으로 스며들어 갔다. 이 눈물이 무덤 속에 있을 당신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듯, 그는 울며 말했다. 그의 무능함, 괴로움이 눈물을 타고 땅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목소리는 고통과 낡은 것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새되고 갈라진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저는 도저히... 아리아 님을 루체님과 비교하지 않고, 그에 빗대어보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도망쳐 나왔노라고. 도저히 그 곁에 있을 수 없노라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늘 있던 일이었다. 자신의 일과 책임에서 회피해 이곳으로 와서, 이미 죽은 사람. 그것도 당신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었다. 당신은 내 유일한 대공이었고, 빛이었으며, 은인이었고, 누이였으며, 또 어머니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당신이 내 곁에 없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위해 살아달라 하였지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는 오직 한사람, 루체만을 위해 살아온 것이었으니... 정말로, 루체의 당부와 부탁은 세레의 심장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루체는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체님...”
당신은 되돌아오실 수 있나요.
붉은 오른 눈에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절망이었다. 당신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도대체 왜 이렇게도 서글픈지. 이 영생이라는 것은 또 다른 저주인지. 루체님, 루체님. 아무리 그렇게 부르고 불러도 죽은 사람이 다시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는 애타게 불렀다. 당신이 그리워요. 분홍빛 왼 눈은 그저 사물들을 비추었다. 끝없이 물을 내보내며, 주위의 사물들을 비추고 당신이 있을 무덤을 담는다. 아, 역시 희망이란 없다. 그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뿐. 붉음도, 분홍도. 결국엔 전부다 절망일 뿐이다.
“저는 당신의 손녀가 죽는 모습을 봤어요. 유니 님이, 희생하시는 모습을...”
유니 님은 아리아 님보다도 당신을 더욱 닮아있었죠.
그래서 더 눈물이 났어요. 당신을 기억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우는 수밖에는 없었죠.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어요. 그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제가 여전히 그 때의 저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겁쟁이로 살테죠. 앞으로도. 계속. 그는 묘비의 이름 부분을 쓰다듬었다. 반들반들한 돌에 파인 홈이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운 감각이 피를 타고 심장에 틀어박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아이는 다시 살아났지만, 저는 가까이할 자신이 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못했고, 그 아이는 더욱 당신과 닮아있으니 어찌 가까이 할 수 있겠나요. 또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내 말을 듣는다면 나를 혼낼지도 모르죠. 어쩌면, 어르고 달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루체님, 저는 자신이 없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유대를 봤으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유니 님 곁에서 그를 보좌하고, 평생을 지킬 자신이 없어요. 사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유는 그 사람 때문도 있답니다. 이미 완벽한 동료가 있으니까요... 그 아이는 당신과 닮아 분명 저를 반겨주겠지만, 저는 그래도 자신이 없어요. 그것이 그 아이의 최소한의 예의라는 사실을 이미 아니까요. 그 아이 곁에는 저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아이를 아껴줄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미 다 늙고 과거의 흔적만을 더듬는 저는 방해만이 될 테지요. 돌아와 주세요. 그러니까, 제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유대를 주세요. 떨리는 손이 비석을 더듬었다. 바람에 꽃이 살랑이고, 하얀 머리카락이 살랑인다. 머리카락만 본다면 그는 필시 노인인지라. 울며 칭얼거리는 모습은 괴리감이 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루체님, 루체님... 눈물이 그치지 않아요. 저는 그때가 너무 그리워요.”
제발 제 눈물을 닦아주세요. 그러면 나는 당신을 위해 죽을 때까지, 평생을 영원히 싸울 터인데. 아, 부디 꿈에라도 좋으니 한 번만 제 앞에 나타나 주세요. 그리고 바른길을 제시해주세요.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의 종이고 당신의 동생이며 당신의 자식이고 당신이 구해주었던, 그 여리디 여린 아이예요. 당신이 기억하는 눈물이 많은 게 여리디 여린, 그 아이로 저는 평생을 남아있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꽃도, 비가 오는 날 빗방울에 흔들리는 꽃도, 태풍이 오면 꺾이지 않기 위해 흔들리는 꽃도 사랑하는 그 때의 그 아이로 저는 남아있을 겁니다. 오직 당신이 돌아온다면 저를 알아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루체님.
세레.
세레...
그렇게 딱 한 번만 이름을 불러주신다면 루체님, 저는...
세레의 고해를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의 눈에서는 비가 떨어졌다. 그것과는 별개로 하얀색 머리카락은 바람에 살랑이고, 꽃들도 바람에 맞추어 살랑였다. 하늘은 그저 그런 고해를 지켜만 볼 뿐인지라. 세레는 그런 당신이, 하늘이 야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끝없는 고해와 당신에게서 받은 은혜에 관해 이야기할 뿐이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